우금티 추모예술제 개최 및 우금티 방문자센터‧상징광장 조성

11월의 역사인물 포스터.(포스터 제공=공주시)

 충남 공주시가 11월의 역사인물로 ‘우금티 전투의 동학농민군’을 선정했다.

강석광 문화재과장은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서양을 반대하고 왜인들을 척결하겠다는 ‘척양척왜’의 깃발을 걸고 반봉건·반외세 민중운동을 벌였던 우금티 전투의 동학농민군을 11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1894년 6월 말부터 공주 대부분 지역은 일본군 철수를 요구하는 농민군들이 장학하거나 확보하는 등 봉기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손병희가 이끄는 충청도 북동부지역 북접농민군은 전라도에서 올라온 남접 전봉준 부대와 합류, 4만에 이르는 대대적 연합부대를 형성해 충청감영이 자리한 공주를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

공주감영에 입성하면 한양으로 진격하는데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1차 봉기 때 전주성을 점거하고 중앙정부와 화약을 맺은 것처럼 협상력을 극대화 할 수 있었다.

전봉준과 손병희 연합군 약 4만 명은 10월 23일부터 3일 동안 경천(敬川)으로부터 이인(利仁)ㆍ효포(孝浦)ㆍ판치(板峙)ㆍ능치(綾峙)를 중심으로 약 100명의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효포를 둘러싼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농민군의 기세에 관군은 잠시 물러서기도 했지만, 동학농민군은 2차에 걸친 공주 대전투에서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했다.

감영을 배후에서 공격하려던 하고개 전투의 사망자를 대량으로 수장한 ‘송장배미(용못)’, 길을 닦다가 해골이 여러 바지게가 나왔다는 하고개, 점심을 먹다가 일본군에게 몰살당한 농민군이 즐비해 공동묘지가 되었다는 승주골·은골·방축골 등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한편, 정부에서는 올해부터 매년 5.11일을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동학농민군의 뜻을 재조명하고 나라를 위한 희생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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