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이 26일 백두산호랑이 수컷 2마리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으로 안전하게 이송됐다고 밝혔다.(사진출처=산림청)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에 두 마리 이송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멸종위기종 ‘백두산호랑이’가 설을 맞아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으로 돌아왔다.

백두산호랑이가 한반도 남쪽 숲에 방사되는 것은 100여년 만의 일로 충분한 휴식과 적응 훈련을 거친 뒤 국민에 공개될 예정이다.

산림청(청장 신원섭)은 백두산호랑이 수컷 2마리가 지난 25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으로 안전하게 이송됐다고 26일 밝혔다.

주인공은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의 ‘두만(15살)’이와 대전 오월드에 있던 ‘금강(11살)’이로 25일 경북 봉화로 각각 옮겨졌다.

두 마리 모두 한중 산림협력회의를 통해 산림청이 중국에서 기증받은 호랑이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지막 백두산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에는 50여 마리의 백두산호랑이가 전국 동물원에 사육 중이며 산림청은 향후 유전형질이 우수한 호랑이 십여 마리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다.

이번 이송이 의미 있는 것은 한반도에서 사라졌던 ‘백두산호랑이’를 백두대간 숲에 첫 방사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호랑이 숲’은 4.8ha 규모로 국내에서 가장 넓은 호랑이 전시장으로 자연 서식지와 최대한 유사한 환경으로 만들어졌으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아시아 최대 규모(5179ha)로 조성됐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호랑이 숲’을 비롯해 세계 최초의 산림종자 영구 저장시설인 시드볼트(Seed Vault), 기후변화지표식물원, 고산식물 연구동, 야생화 언덕 등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백두산호랑이로 알려져 있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사진출처=산림청)

◆백두산호랑이는?

‘백두산호랑이’는 ‘한국호랑이’라고도 불리고 열대지방 호랑이와 다르다.

현재 전 세계에는 수마트라 호랑이, 인도벵골호랑이, 말레이호랑이, 아모이남중국호랑이, 인도차이나호랑이, 시베리아(백두산)호랑이 등 여섯 종류의 호랑이가 살고 있다.

이 가운데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우리 한반도에 살고 있는 백두산호랑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열대지방에 살고 있다.

지난 2010년 서울대 이항 교수팀 연구에 의하면 한반도 호랑이의 유전자와 시베리아호랑이의 DNA 염기서열이 100% 일치한 것으로 밝혀져 시베리아호랑이가 백두산호랑이라 알려져 있다.

백두산호랑이는 몸무게가 최대 300kg 이상으로 열대지방 호랑이에 비해 30% 이상 크며 활동영역 또한 인도의 벵골호랑이가 20㎢지만 백두산호랑이는 1300㎢로 약 70배나 넓다.

수컷이 1300㎢, 암컷은 400㎢에 달하는 행동반경을 가지고 있고 부모를 떠나면 영역개척을 위해 400㎞씩 이동하기도 한다.

백두산호랑이는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먹잇감 감소와 밀렵으로 남한에서 사라져 멸종위기에 있지만 아직 450마리 정도의 백두산호랑이가 연해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북한 접경에 살고 있으며 연변에서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200km임을 감안하면 머지않아 이 호랑이들이 다시 한반도로 돌아 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럴 경우 그들에겐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의 경계뿐 아니라 백두대간을 타고 휴전선으로 끊어진 반도의 허리를 넘어 경북 봉화까지 내려 올지도 모를 일이다.

 

1908년 11월 최남선이 창간한 ‘소년’ 잡지에 최초로 실린 한반도 호랑이 지도를 세련되게 각색한 그림.(사진출처=SNS)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 지도

최남선이 창간한 ‘소년’(1908년 11월 1일)은 문학사와 잡지사에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 간행물로 첫 호에 실린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신체시(新體詩)’의 효시로 인정받고 있다.

이를 기념해 11월 1일을 ‘잡지의 날’로 정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 지도를 최남선이 처음 고안해 이를 ‘소년’ 창간호에 실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이 시기에 최남선은 이 한반도 호랑이 지도를 고안해 호랑이를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형상화했다. .

그는 “진취적이고 희망적인 소년 한반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생기왕성한 원기의 끝이 없음을 누구의 저지도 받지 않고 그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남선은 한반도 호랑이 지도에 대해 “맹호가 발을 들고 포효하면서 동북아 대륙을 향해 나르는 듯 뛰는 듯 생기 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최남선의 그림을 본 독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황성신문은 “20세기 신천지에 우리 대한 지도의 전체가 돌연히 신 광채를 발현하니 장하고 웅(雄)하다”라고 격찬했다.

이에 최남선도 “크게 강호(江湖)의 찬미를 얻어 어떻게 좋은지 모르겠다”고 흐뭇함을 표하고 그 후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 표지에 호랑이 그림을 즐겨 넣었다.

1913년 창간한 어린이 신문 ‘붉은저고리’에는 소년이 양팔로 호랑이 두 마리와 악수하듯 붙들고 있는 모습을 도안했고 ‘청춘’(1914)의 표지 그림은 꽃을 든 청년이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다.

최남선은 우리민족이 산중의 왕인 호랑이가 되기를 열망하며 한반도 호랑이 지도를 그렸고 이는 민족의 웅비를 염원하는 국민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원작자가 누구인지 잊혀진채 널리 쓰이고 있다.

(아시아뉴스통신=홍근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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