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기자./에이티엔뉴스 DB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 던 어른님 벗님 어찌 하리~’
당시 국민학교 시절 교가는 몰라도 뜻 모르고 즐겨 불렀던 광복절(光復節) 노랫말.
일제 식민지하에서 해방된 74주년 광복의 노래가 그 어느 해 보다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에 삼일절, 제헌절, 개천절을 포함한 4대 국경일 중 광복절 만큼은 싫고 짜증났던 날로 아스라이 기억된다.

60년대 국경일은 학생들에겐 그냥 공휴일만은 아니었지만, 특히 광복절은 9시쯤 학교 운동장 한켠에 세워놓고 풍금에 맞춰 광복절 노래가 저절로 외워질 정도로 예행연습을 번복했다.
1시간가량 진이 다 빠진 다음에야 어른들이 왔다.

면장, 지서장, 우체국장, 소방대장, 이장, 반장, 양조장 주인 등 동네 유지들은 모두 와 백노지에 등사한 악보를 받아들고 10시 정각 우렁찬 싸이렌이 울리면서 경축 기념행사는 시작됐다.

신나는 여름방학 중에 학교에 가야 했으니 행사의 깊은 뜻을 되새기기 보다는 코끝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뜨거운 뙤약볕에 고생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하지만 이는 전쟁을 겪지 않고 사상과 이념을 모르던 세대들의 추억담일 뿐, 어찌 그 날을 잊겠는가! 빼앗기고 끌려가고 총알받이 된 숭고한 분들의 생명의 씨가 오늘의 번영을 이룬 것을요.

광복절 아침에 대한민국 만세를 힘차게 부르고 싶어지는 요즈음이다. 한반도에서 열도를 향해 ‘독도는 우리 땅 만세!’, 세계 최고 반도체 만세!’라고...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합방되고 해방된 1945년 8월 15일까지 강점기 34년 11개월 16일 동안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강제노동과 징용으로 죽임을 당하며 우리의 역사, 언어, 문자까지도 깡그리 앗아갔다.

심지어 이름과 성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한 죄를 짓고도 여태껏 뉘우치기는 커녕 아직도 침략근성이 남아 독도를 삼키려 하고 있으니, 온갖 탄압 속에서도 조국광복을 외쳤던 순국선열들이 지하에서 애통해 할 일이다.
이제는 한 번 빼앗겨 본 경험을 잊지 말고 국권을 더욱 튼튼히 다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강국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이 침략 야욕과 만행을 은폐하는 동안 피해자인 우리는 광복 이후에도 6.25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10월유신, 6.10항쟁, 5.18민주화운동 등 격동의 사회를 겪으며 잠시나마 굴욕의 역사를 잊지는 안했는지 돌이켜 봐야한다.

우리는 이 같은 격랑 속에서도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탈바꿈 했고, 세계 10대 수출대국 중 7번째로 이탈리아. 홍콩.영국을 앞질렀다.

이런 경제적 부흥을 발판삼아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3 대전엑스포, 2002 월드컵,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모두 성공적으로 유치해 세계 속의 한국으로 우뚝 선 눈부신 성장을 일궈낸 것이다.
이는 세계 각지를 돌아보면 한류 열풍이 어느 정도 인가를 담 박 느낄 수 있다.

동남아나 유럽 쪽은 물론, 6.25 이후 멀기만 했던 중국 땅 어딜 가도 흔한 우리말 안내판이 그렇고 동토의 땅 소련이 1991년 붕괴되면서 개방된 러시아에서도 대한민국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모스크바 공항에 내리자 눈에 보이는 TV는 모두 삼성제품이고 길거리는 삼성 휴대폰 선전판이 즐비했으며, 고풍스런 LG다리를 건너 호텔에 투숙하니 LG TV에서 우리 드라마가 방영돼 놀랐다.

한 공원에서 ‘대~한민국 짜자 작~짜’을 장난삼아 했더니 이 곳 저곳에서 같은 답장이 날아들며 남녀 학생들이 몰려와 사인을 요청해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시내 유명극장에서 민속춤 관람 중에 여러 나라 관광객을 제치고 유독 한국인인 나를 지목하고 무대로 잡아끌어 무희들과 함께 춤췄던 기억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제 나라를 되찾은 광복의 기쁨은 뒤로하고, 이웃나라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애국가를 동력으로 당당히 맞서 경제전쟁에서 반드시 승리의 태극 깃발을 휘날리자!

작금의 사태는 일본이 괴롭히고 북한은 애태우고 중국.러시아는 겁주고 미국은 눈치만 보고 있으니 조선아 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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