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미술관 2019 아트랩대전① 이지혜 '뿌리의 찬란함'

2019 아트랩대전(ARTLAB DAEJEON)은 이응노미술관의 새로운 프로젝트로 이지혜, 손민광, 카일킴(김경호), 김태훈, 김영웅, 백요섭 등 6명의 작가가 선발돼 6월부터 11월까지 전시공간을 마련해 준다. 회화, 사진, 도자, 설치, 미디어 등 시각예술분야에 실험적인 작업에 열정있는 작가들을 지원한다. 젊고 창의적인 작가들에게 예술인으로서 경력에 발판이 될 것이다.<편집자주> 

이지혜 작가가 작품 '중심'을 설명하고 있다./에이티엔뉴스=정완영 기자

이지혜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빛으로 조명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작가는 생애 첫 개인전이 이응노미술관 2019 아트랩대전이다.
 
이 전시에서 빛은 중성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상징성을 띄면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작동하는 다섯 개의 작품들을 존재의 연쇄로 만든다. 존재의 연쇄 망은 근대가 텅 비워 놓은 공허한 공간을 다시금 충만하게 채울 것이다.
 
흩어져 있는 것을 다시 연결하는 행위 또한 종교적 충동의 산물이다. 이지혜의 많은 작품에 작동되는 상호작용성은 연결 짓는 행위를 관객에게로 확장한다. 작품들은 관객이 관심을 보이면 대답하듯 반응하는데, 이때 빛이 주요한 매개가 된다.

작가는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빛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둠을 밝히고 드러내며 항상 어둠을 이긴다. 나에게 빛은 믿음이고 소망이며 사랑이고 생명이다. 나는 빛을 통해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종교적 영감으로 충만한 작품들은 통상적인 미디어 아트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희성과 화려함 대신에, 간결하고 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특정 종교가 아니더라도, 기도 및 묵상 같은 깊은 몰입적 행위는 현대문명의 수다스러움을 걷어내고 본질과 마주하게 할 것이다. 기도와 묵상을 닮은 간결하고 정적인 작품들은 재미에 가려 의미가 축소되지 않도록 한다. 빛은 오감 중 가장 중요한 감각인 시각의 기본조건이기도 하다.

The Roots(뿌리의 찬란함)_Interactive, Mixed media_34x34x127cm

작품 ‘The roots’는 마치 거울처럼 보는 이를 되비쳐 준다. 그러나 관객이 이 수수께끼 같은 대상에 관심을 표하면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거울은 유리가 된다. 유리 안에는 복잡한 굴곡을 가진 나무뿌리가 돌아간다. 평소에는 거울이고 밝아지면 유리로 바뀐다.
 
이지혜 작가는 하프 미러라는 소재를 사용해 극적 변화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뿌리는 땅 속에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의 관심을 통해서 비로소 드러난다. 감춰져 있는 생명의 근원을 드러내는 것의 주체는 관심이다. 거울 뒤에 감춰져 있다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뿌리는 인생을 비롯한 굴곡진 삶을 반영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겨난 기이한 형태들은 강한 실재감을 준다. 자연의 산물인 인간은 결코 자연이라는 실재를 부정할 수 없다. 거울 혹은 유리 안의 대상은 단순한 주관적 환상이 아니라, 은폐된 객관성이 드러난 것이다. 천국을 비롯해 보이지 않는 차원을 다루는 형이상학적 사고는 객관적 실재를 가정한다. 반면 정보화 사회를 물적 토대로 삼는 포스트 모던 문화는 모든 것을 가상으로 취급하곤 한다.

초승달_LED,적외선센서,전자회로,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_841x594mm, 2019

작품 ‘초승달’은 캔버스에 그려진 끊어질 듯 가느다란 초승달이지만, 다가서면 둥근 빛이 새어 나와 보름달처럼 환하게 변한다. 그것은 감춰져 있지만 실재하는 것을 말한다. 원을 품고 있는 초승달은 연약함과 동시에 충만과 소망을 암시한다. 물론 보름달은 그믐달이 되고 다시 초승달이 되겠지만, 그 주기적인 변신은 완전히 죽지 않고 다시 부활한다는 희망을 내포한다. 

아파트_하프미러,아크릴,LED,전자회로_160x100x30mm(12piece), 2019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다른 감춰진 본질에 대한 사유는 문명사회에도 확장된다. 작품 ‘아파트’는 아파트 창을 암시하는 균일한 크기의 하프 미러로 된 사각형들에 다양한 빛의 상태를 연출함으로서 각자 다른 삶의 이야기를 비춘다. 작가는 굳이 인간을 등장시키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흐릿한 창은 있어도 완전히 꺼져있는 창은 없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중심_아크릴,LED조명,거울,전자회로_40x40x100mm, 2019

작품 ‘중심’은 ‘우리 모두의 중심에 있는 빛’을 흔들림으로부터 방어하고자 한다. 공중에 매달린 아크릴 막대를 통해 전달되는 빛은 초점이 맞을 때 중심에서 가장 환하게 빛난다. 빛이 조금이라도 중심을 벗어나게 되면 빛은 그 존재를 모두 드러내지 못한다.

동행_아크릴,LED조명,카메라,알루미늄프레임,전자회로_2700x300x200mm, 2019

작품 ‘동행’은 긴 삶의 여정을 은유하는 수많은 아크릴 조각들이 높낮이가 다르게 굴곡져 있고 그 앞을 지나는 관객의 발걸음마다 빛이 따라오는 듯이 연출한 작품이다. 관객의 위치를 인식하는 카메라에 의해 켜진 조명은 여로에 정렬한 아크릴 조각들을 통해 새어 나오며 관객들을 따라 다닌다. 동행이라는 제목은 짧지 않은 삶의 여정에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여기에서 빛은 하나의 기원을 가지기 보다는 편재한다. 그것은 ‘빛이 나와 함께 하는 경험’을 전달한다.
 
이지혜 작가의 작품은 빛을 신으로 삼는 전통 또는 빛을 형이상학적으로 신과 동일시하고 신에게 이르는 길로 간주하는 전통과 관련된다. 이러한 전통은 전기의 시대에도 이어진다. 이지혜 작가의 작품은 미디어 아트라는 현대적 수단으로 오래된 전통과 접속한다.
 
이지혜 작가는 말한다. 어두움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또렷해진다. 어두운 공간을 채우는 빛의 이야기를 이 전시를 통해 그 빛을 만나게 되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이지혜 작가의 전시는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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