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양자컴퓨터 연구 경향 ‘크기와 정확도’ 싸움
- 양자컴퓨터 연구개발과 실용화 대응 ‘속도전·장기전’ 병행 연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양자기술연구소 정연욱 박사가 양자컴퓨터의 초전도 양자 비트 시뮬레이션을 설명하고 있다./에이티엔뉴스=이기종 기자

현재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동굴 속에 살고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보듯이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단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한지를 지금부터 통찰하고 ‘옥석(玉石)’을 구분해야 한다.

본지는 2019년 ‘양자·AI’ 연재를 통해 미래 산업혁명의 양축인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과 관련한 주도적인 활동을 소개해 꿈과 희망이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려보려고 한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양자컴퓨터와 관련해 향후 5년 간 양자컴퓨터 하드웨어 등 핵심원천기술개발과 양자컴퓨팅 신(新)아키텍쳐, 양자알고리즘, 기반 소프트웨어 등 미래유망 분야에 총 445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양자컴퓨터 연구는 1980년대 초반에 기본적 개념이 제안된 이후, 여러 단계의 기술적 도약을 거치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 연구개발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약 10년간 초전도 기술을 기반으로 양자컴퓨터를 연구하고 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양자기술연구소 정연욱 양자정보팀장을 만나 양자컴퓨터의 국내외 연구 현황, 국내 연구과정, 향후 연구방향 등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 양자컴퓨터를 연구하게 된 동기는?

▷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우연하게도 양자기술이 태동하던 시기에 머물렀던 국외 연구소들에서 얻은 다양한 연구 경험들의 축적에 관련 기술의 모태가 되는 표준 연구원의 특성이 결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90년대 중·후반에는 독일에서, 그리고 본격적으로 양자컴퓨터 연구가 시작되던 2000년대 중반에는 미국에서 각국의 국립연구소에서 초전도 양자소자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양자컴퓨터와 관련된 초기 정보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접하게 되었고, 특히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양자컴퓨터 관련 연구하는 핵심 연구팀을 우연하게 자주 접하게 됐다.

또한 미국과 한국에서 표준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측정표준을 연구하다 보니 양자컴퓨터에서 필요한 기초적인 연구인 ‘정밀성’ 연구와 ‘양자역학 소자’ 연구 등이 밀접하게 연계돼 관심을 가지게 됐다.

2005년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으로 와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용하여 초정밀 전압표준을 만드는 조셉슨 전압표준, 전기적 잡음을 이용해서 절대온도 값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연구 등 표준관련 업무에 매진했다.
 
현재의 모습은 2010년경 하나의 초전도 큐비트(Qubit)를 만드는 연구를 하면서 양자컴퓨터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당시 국내에서는 나노기술 연구가 가장 널리 행해지던 시절이어서, 초전도 기반으로 양자정보 관련한 연구를 한다는 것이 크게 유행을 하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그 이전부터 몇몇 선구적인 교수님들은 양자컴퓨팅 관련 연구과제를 중·소 규모로 진행하는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국외의 연구경향과 비교해보면 우리 연구실은 초전도 양자컴퓨팅 연구를 외국에 비해 10년 이상 늦게 시작한 셈이 되지만, 현재 단일 큐비트의 완성도에서는 미국, 유럽의 선진 연구그룹과 대등한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아직은 소규모 연구팀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개의 큐비트가 필요한 대규모 양자컴퓨터 시스템으로의 확장은 막 시작하려 하는 단계일 뿐이다.

- 국내외 양자컴퓨터 연구를 비교하면?

▷ 국내 연구 흐름은 세계적 주류 연구그룹과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국내는 양자컴퓨터의 연구는 지금 시작되는 단계이고, 국외는 그러한 단계를 10여 년 전에 이미 지나서 현재의 연구활동은 산학연 전반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긴 호흡으로 연구의 진행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기준은 연구적 또는 기술적 한계를 인식하는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국내의 양자컴퓨터 연구는 선진 연구진에 비해 최소 10년 또는 최대 30년 늦게 시작한 상황이기 때문에 연구팀은 기술적 한계를 느끼기보다는 초기 기술부터 습득하는 시점이고, 이는 이 분야의 초창기와 같기 때문에 연구의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양자컴퓨터 연구를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 국내의 여러 연구자분들과 함께 고민하게 된다.
 
이때 함께 공유하는 이야기는 현재 이 분야는 완전히 틀이 잡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분야든지 본인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시작점으로 하면 된다는 것과 진입장벽이 높고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오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길게 보고 연구하는 게 좋겠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지금의 폭발적 관심이 지나면 잠시라도 양자컴퓨터 연구에 기술적 한계 즉 ‘겨울’이 올 수 있다는 인식을 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의 역사를 보면 기술 개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와 발전이 정체되는 시기가 반복되어 왔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1995년경 암호해독의 가능성 때문에 양자컴퓨터 연구가 폭발적 관심을 받으면서 팽창한 이후, 여러 번 상승기와 정체기가 반복되었고, 매번 한계를 돌파하는 기술적 도약이 이루어지면서 지금의 호황기가 온 것이다.

따라서 이 분야에 오래 경험한 국외 연구자들은 이런 호황은 상승과 하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지금의 호황 뒤에 잠시나마 다가올지도 모르는 연구의 겨울을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High risk high return’ 성격의 연구에서는 월동하고 또 다시 도약하는 그러한 첨단 연구의 사이클이 있다는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후발주자이면서 기술의 초기 단계인 국내 연구자들은 기술 수준을 높이고 격차를 줄여서 다음번의 도약을 함께 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양자컴퓨터 분야의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이 기술의 완성 지점이 어떤 모습일지는 지금 아무도 그릴 수 없지만, 지금의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파괴적 혁신 기술의 강력한 후보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재 수준과 잠재력을 정확히 파악해서 적절한 투자를 통해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는 매우 정교한 전략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 양자의 특성은?

▷ 양자(Quantum) 컴퓨터는 기존 0과 1을 사용하는 지금의 디지털 컴퓨터와는 개념부터 완전히 다른 계산 방식이다.
 
즉, 양자 정보(Quantum Information)의 계산 단위는 ‘0’과 ‘1’ 상태 뿐 아니라, 그 둘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둘 사이 있는 모든 조합을 활용한다. 이를 양자역학의 ‘중첩’ 상태라고 부른다.

디지털 기술에 기초하는 정보통신(IT)기술은 0과 1로 이루어지는 이진법 논리를 사용해 0과 1의 조작과 처리를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생산·유통·전달한다.

현재의 디지털 정보처리 기술은 물질의 특성을 0과 1의 신호로 바꾸는 과정이자 그 결과다.

실제로 디지털 신호로 0과 1을 만들어 내는 경우, 회로가 완벽하지 않아서 0.2 또는 0.7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실제 회로에서는 예를 들어 0.5보다 크면 1, 0.5보다 작으면 0 이라고 정해 놓으면 0.2나 0.7 혹은 0.75가 나오더라도 아무 문제없이 0 또는 1 이라고 인식하고 처리할 수 있다. 즉, 회로를 매우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에서는 0.7과 0.75 또는 0.8 이 모두 다른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오류에도 작동이 민감하게 된다.
 
이는 디지털 정보처리에서 모두 1로 인식되는 결과이지만, 양자컴퓨터에서는 디지털 정보처리와는 달리, 0 과 1의 조합이 모두 다른 정보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다룰 수도 있는 동시에 회로의 동작이 매우 정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의 특성은 양자상태의 ‘중첩’이라는 특성을 이해해야만 하고,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슈뢰딩거의 고양이’ 비유에 해당한다.

양자컴퓨터는 정보를 처리하는 동안에 0과 1이 적당히 조합을 이루는 중첩된 상태로 정보를 처리하다가, 맨 마지막에 그 정보를 읽어낼 때 0 또는 1이라는 상태를 확률적으로 나타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또 하나 양자컴퓨터에서 중요한 양자역학의 요소는 ‘얽힘’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것은 두 개의 양자비트(큐비트, 양자 정보처리 단위)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하나의 큐비트에서 두 개의 상태가 ‘중첩’되어 있고, 이러한 큐비트가 여러개 있을 때 양자역학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얽힘’ 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양자컴퓨터의 핵심 개념이다.

- 연구를 진행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 국내 연구에서 어려운 것은 첫 번째는 연구 인력과 저변이 넓지 않은 점이고, 두 번째는 현재 상황의 정확한 이해와 전략적인 연구개발 투자의 부재이다.

먼저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간다는 마음으로 지난 8년간 묵묵히 지금의 연구팀과 연구실을 만들고 연구 역량을 키워왔다.

여기에는 제가 속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선배님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를 추진하고 지원해 주는 비전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연구팀의 실험환경은 세계 어느 팀과 비교하더라도 최첨단이라고 자부할 수 있지만, 이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인력의 부족과 중장기 전략의 수립이 지금 시점에서는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의 구성원들은 양자컴퓨터를 세상에 등장하도록 연구하는 열정에 가득 차 있다.

연구지원과 관련해서는 현재는 국내의 여러 연구팀들과 협력연구를 통해서 양자 컴퓨터와 관련해 기반 또는 여건을 조성하려 노력 중이고, 연구과제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려 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초전도 양자소자 기술을 확장해서, 양자정보처리에 필요한 핵심 기술 중에서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술들을 실용적 수준까지 완성도 높게 개발하는 것에도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초전도 소자를 이용해서 빛의 알갱이인 광자를 하나하나 검출해서 볼 수 있는 기술을 매우 성공적으로 개발 중이다.

우리 연구실원은 7명 정도이다.
 
이를 통해 표준연구원의 목적과 특성에 맞게 큐비트의 성능을 향상하고 그 성능을 평가하며 양자상태를 가장 정밀하게 조작하고 길게 유지시키는 등의 요소기술을 적절한 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 기반이 취약한 초전도 양자 컴퓨터를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을 가진 우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연구재료나 장비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며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온전히 사람의 몫이다.

양자컴퓨터 연구는 많은 부분 국내에서는 관련 기술을 가진 업체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료나 장비를 국외에서 찾거나, 필요한 경우 손수 제작해야 했다.

그동안 연구를 하면서 핵심 역할을 했던 3명의 연구원들에게 이 자리에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 SK하이닉스에서 일하고 있는 박정환 연구원,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 가 있는 하동광 연구원, 노스웨스턴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에 가 있는 노태완 연구원이 생각난다.
 
이 세 사람은 지난 10여 년 간의 연구 여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 주었고, 많은 기술적 도약들을 이루어 준 감사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보유한 초전도 큐비트 양자컴퓨터 기술 역량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본다.

그들은 제가 경험하고 함께 일했던 외국 최고 수준 연구기관의 학생, 박사후 연수(Post Doctor)들에 비교하더라도 월등히 우수한 연구 역량을 보여주었다.

양자컴퓨터 연구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연구비가 필요한 연구이다.

정부출연연구소라 하더라도 양자컴퓨터와 같은 대규모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비가 항상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우리 팀은 주어진 여건에서 기술적 도약을 단계별로 빨리 이룩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며 장비를 직접 만들어서라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는 가끔 여기 연구원을 ‘변방’이라고 농담처럼 지칭하기도 한다.

지금은 양자컴퓨터가 아주 주목받는 연구주제가 되어 있지만, 10년 전에 혹은 그 이전에는 국내에서는 크게 유행하는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와중에도 유행에 너무 흔들리지 않고 미래 기술의 트렌드를 잘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금방금방 결과가 나오지 않는 난이도 높은 연구를 꾸준하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꾸준함이 지금 선진국 수준의 연구 경쟁력을 확보한 원동력이었고, 이러한 변방의 연구를 믿고 열정으로 꾸준히 따라와 준 우리 연구팀을 거쳐 간 많은 학생들과 연구자들의 공로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한 두 단계의 큰 도약이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이룬 성과가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는데 마중물이 되고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양자기술연구소 정연욱 박사와 그 연구팀이 일하고 있는 초전도 양자컴퓨터 연구실./에이티엔뉴스=이기종 기자

- 앞으로 연구 진행은?

▷ 현재 양자컴퓨터의 주된 관심사는 큐비트가 많아지는 갯수 경쟁을 넘어서 큐비트를 얼마나 정밀하게 조작하여 어려운 계산을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정확도와 정밀성의 싸움이다.

다행히 우리가 연구실에 자체적으로 만든 큐비트 소자는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큐비트의 결맞음(coherence) 완성도는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제가 양자표준 관련 연구를 장기간 해 오면서 습득한 정밀측정에 관한 노하우가 접목되어 있다.

우리 연구팀의 장점은, 우리가 작은 변방의 연구팀이라는 점을 스스로 잊지 않고, 우리의 단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당장 대규모 연구팀과 속도전을 할 수 없다면 핵심 기술에서 아주 탄탄하고 강한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연구 진행을 또박 또박, 한 번 할 것을 여러 번 반복하여 사상누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탄탄한 기초체력이 갖춰지면 다른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국내 연구팀들과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점점 더 큰 양자컴퓨터 시스템을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표준과학연구원은 기본이 되는 ‘측정과학’을 하는 연구원이다.

여기는 극도로 정밀한 측정과 조작, 그리고 그를 위한 양자상태의 보존방법 개발 등이 특기이다.

개인적으로 초전도 소자를 설계하고 만드는 분야에서, 그리고 아주 낮은 온도에서 정밀한 측정을 하는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연구에서 표준연구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양자상태를 가장 잘 유지하는 좋은 큐비트 소자와, 양자컴퓨터를 위해 세계 최고의 정밀도를 가진 큐비트 조작 및 측정 기술을 완성하는 것이다.

지금 국내의 연구 역량을 보자면, 단적으로 내년에 구글(Google)이나 아이비엠(IBM) 등과 같은 앞선 연구팀을 단번에 따라잡을 것도 아니고, 단시일 내에 큐비트 100여 개 이상의 양자컴퓨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매우 효율적이 전략을 가지고 5년 10년을 꾸준히 추진한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이는 양자컴퓨터 기술이 금방 완성될 기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후발주자이고 국내 인력 풀이 제한된 점을 잊지 말고 정말로 효율적인 투자 및 추진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양자컴퓨터 기술은 지금도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변화하면서 최종 목표가 계속 살아 움직이는 분야이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 기술·인력 도입,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라는 기존의 성공 경험을 반복하는 공식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 분야라고 본다.

또한 양자컴퓨터는 단순히 한두 가지 기술로 해결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국내의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자들이 참여해야 할 분야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큐비트 기술을 저희 팀이 아낌없이 제공할 용의가 있으니, 양자컴퓨터 개발에 열정을 갖고 참여하실 분들이 많이 생겨서 미국이나 유럽처럼 장기적으로 대규모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개인적 연구경험을 말하자면 학위과정에서 고온초전도체 소자를 연구했다.

고온초전도체라는 재료는 매우 복잡하고 지저분하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장단점이 있는데, 이러한 재료를 다뤄 본 경험이 도움이 됐다.

역설적으로 지금은 매우 깨끗한 재료(알루미늄)를 사용해야 하는 초전도 큐비트 소자에서 양자상태를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거나 대규모 회로를 어떻게 균일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복잡한 물질을 다뤄본 경험이 결정적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제가 지난 30여년 동안 초전도 분야에서 그리고 메트롤로지(측정과학) 분야에서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여러 연구를 수행해 왔는데, 지금 양자컴퓨터 연구를 하는 자리에 있다 보니 그 모든 경험들이 매우 소중히 쓰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각자 다른 연구 분야로 매진하다가 전혀 관계없는 분야에 종사하던 대학 동기들을 양자정보라는 분야가 태동하면서 다시 같은 학술대회에서 빈번히 조우하는 흥미로운 경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connecting the dots”라는 개념이 상기되는 부분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우리 연구의 최종 목표는 실제로 작동해서 사람들의 생활에 변혁을 가져오는 양자컴퓨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양자컴퓨터와 관련한 연구는 단기적 과제가 아니며, 장기적으로 꾸준한 연구와 투자가 이루어질 때 하나의 완성된 차세대 컴퓨터가 등장하는 것이다.

양자컴퓨터와 같은 프론티어 연구에서 연구전략은 연구과정 자체를 항상 개선 및 보완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매 순간 기술적 동향과 해외 선도연구팀의 방향을 정밀하게 모니터하고, 정부 연구지원의 특성에 맞게 일년, 단기, 중기 등으로 목표와 연구전략을 구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양자컴퓨터를 연구 및 개발하는 것은 속도전인 동시에 장기전이라는 것이며, 이 기술이 어느 정도 완성되는 시기는 10년 후일 수도 있고 어쩌면 30년 혹은 그 이후일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의 연구 특성에 있다.

앞으로 연구의 과정은 겨울이 왔다가 봄이 올 수도 있고 냉탕과 온탕이 반복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술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장기적인 비전,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한 효율적 전략으로 10년을 더 추진할 수 있다면, 양자컴퓨터 기술은 어떤 형태로든 인류에 혁신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엄청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자로서 바라보는 양자컴퓨터는 정말 어렵고 만만하지 않은 대상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상이고, 그러기에 더 도전할 의욕이 넘치는 기술이며, 정말로 그릿(GRIT)이 필요한 연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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